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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 (105)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입력일 2005-08-28 수정일 200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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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와 죄까지도 인정해야

나는 일반적인 사람들 속에 묻혀 들어 상품에 번호가 매겨지듯이 처리되어도 좋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특정한 성격과 더불어 이러저러한 능력과 약함을 소지한 구체적인 존재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될대로 되어라』 또는 『어떻게 되어 가든 상관없다』는 식의 부정적이고 나약한 태도가 아니라 진실을 보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동물들과는 달리 실제의 자기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를 생각할 능력이 있다. 자신이 되기를 원하는 형태를 머리 속에 그려 놓고 그것과 더불어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거나 지극히 당연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가능성, 긍정적인 면 뿐만 아니라 약함, 한계성, 부정적인 면까지도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을 더 계발하고 키우려고 언제나 노력해야 하지만 우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진실하고 튼튼한 바탕을 형성할 수 있다.

나의 실수와 죄스러움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각자는 자신이 처한 주변의 환경을 개선해 나가려고 언제나 노력해야 하지만,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나의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대인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려고 애를 쓰지만, 실제의 삶은 외부의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확고한 안전 보장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삶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픔과 불행이 가져다 주는 쓰라림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 아픔과 불행에 대한 거부는 그것이 삶에 지니는 의미를 상실하게 한다. 아픔과 불행을 옳게 이해하여 지고 나갈 때 그것은 삶을 더욱 깊게 하고 정화시킨다. 그러한 모든 사건들도 가벼워지고 고통 안에서 깊은 자유를 체험하게 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사실에 긍정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에서 가능하다. 어떤 심오한 철학적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대한 믿음과 일치로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고찰로 우리는 자신의 한계와 완벽하지 못한 삶, 부족한 이웃과 존재하는 모든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는 복합적인 문제들에 눈을 감고 되는 대로 두고 보자는 것은 아니다. 자신과 후손을 위해서 용기를 내어 개선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

전헌호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