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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 (102) 자비

입력일 2005-08-07 수정일 200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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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할수록 더 강해져

자비란 어떠한 위기 상황도 원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무엇이든 일어나도록 두는 것과는 다른 강하고 깊은 것이다.

진정한 자비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도록 삶의 공간을 제공한다. 자비는 관용으로 타인을 용서하고, 그를 신뢰하기에 자유롭게 하며,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질투와 시기에서는 무자비가 발생한다. 자비는 나에게 없는 어떤 것을 타인이 가지면 그것을 인정해 주고 함께 기뻐한다. 자비가 순수할수록 그만큼 더 힘이 강해진다. 완벽한 자비는 다할 줄을 모른다. 진정한 자비는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하고, 인내가 함께 한다.

과르디니는 자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유머 감각을 들고 있다. 유머 감각은 존재하는 고통을 쉽게 지고 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다른 사람을 단지 심각하게만 대하고 항상 윤리적이고 교육적으로만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일은 무척 힘들 것이다. 삶에는 논리를 벗어난 별난 것들도 많다는 사실에 대한 안목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르디니는 모든 인간사에는 우스꽝스러운 요소들이 언제나 함께 한다고 보았다.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을 특별히 뛰어난 존재, 귀중한 존재라고 주장할수록 우스꽝스러움은 커진다.

유머 감각은 인간을 지속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인간 자체의 별난 성질을 인식하고 이것을 웃음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인간 존재의 별난 성질에 대한 다정한 웃음, 이것이 곧 유머이다. 유머는 자비로워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웃음 다음에 진지성을 받아들이기란 그만큼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자비는 또한 조용하다. 진정한 자비는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많은 말을 하지도 않는다. 자비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만큼 더 조용해진다. 자비는 바로 매일의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빵과 같은 것이다. 자비가 빠진 삶과 정치는 냉혹하기만 하여 살맛을 가지기 어렵다.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자비로운 분이다. 세상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현시대는 하느님의 자비를 닮은 사람, 풍부한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을 특별히 필요로 한다.

과거에는 나에게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사람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자비로 대할 수 있는 유머 감각이 필요하다.

또한 막강한 힘을 지녔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기도 하는 자연에 대해서도 자비와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유머 감각이 필요하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모든 인간과 자연에 대해 자비롭기를 원하신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