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교부들의 가르침 (44)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 / 이연학 신부

이연학 신부(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입력일 2003-10-05 수정일 2003-10-05 발행일 2003-10-05 제 236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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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철학자’…영적 여정 가르침 전수
에바그리우스 저술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단장’(短章)은 사막 수행 전통과 그리스 철학을 결합하는 휼륭한 도구가 됐다
삼위일체 교의 형성 공헌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
에바그리우스는 345년 경 흑해 연안 폰투스에서 태어났다. 바실리우스에게 독서직을 받고, 그후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381년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여 삼위일체 교의의 형성에 공헌하였다. 이때 주교의 요청으로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곳 고위 관료의 부인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위태로운 로맨스를 계기로 유능한 신학자요 전도양양한 성직자이던 그의 인생은 극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상황 한 가운데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수행의 생활로 접어들었던 것이다(팔라디우스, 「라우수스 역사」 8). 우선 예루살렘에 있던 멜라니아와 루피누스의 수도원으로 갔던 그는 멜라니아의 영향으로 결국 383년 이집트의 사막에 정착하였다. 그리하여 나머지 인생을 수도승으로 살았다.

그는 이전부터 사막에서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던 수도승 전통과 그리스 철학의 전통을 통합하여 독특한 자기만의 스타일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술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단장(短章)」은, 스승의 「한 말씀」에 의존하는 사막 수행 전통과 세련된 그리스 철학을 결합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 주었다. 후에 「사막의 철학자」란 별명으로 불린 그는 불행히도 사후 오리게네스 논쟁에 연루되어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기도와 영적 여정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이후 동서방 교회의 수도승 전통과 신비주의 전통에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 놓았다.

에바그리우스는 영성 생활의 여정을 크게 「수행(修行)」(praktike)과 「영지(靈智)」(gnostike) 둘로 나눈다. 더 흔한 표현으로, 앞의 것은 「활동」에 해당하고 뒤의 것은 「관상」에 해당한다. 수행은 육체에서 오는 정념(情念, pathos)의 정화(淨化)를 목적으로 한다. 즉 영혼을 어지럽히는 내적 세력 내지 소음들, 혹은 그것들의 원인이 되는(더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그것들의 인격화인) 「마귀」들과 벌이는 영적 투쟁의 여정이 바로 수행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이 여정에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대면하게되는 여러 가지 내면의 충동들을 분석하고 그 메카니즘을 묘사하는 데에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는 사람을 괴롭히는 내면의 모든 세력들을 「여덟 가지 악한 생각」으로 요약한다. 순서대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행자가 사막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내면의 적은 「탐식」이다. 그 다음으로는 「성적 탐닉」이며, 「소유욕」(혹은 인색)이 그 뒤를 잇는다. 이 세 가지는 한 마디로 육신을 지닌 모든 존재가 기본적으로 지니는 욕망이로되, 사막의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증폭되어 사람을 괴롭히는 세력들이다.

다음으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이것은 앞의 욕망들을 채우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나 무력감과 관계가 깊다. 또한 많은 경우 자기에게 없는 것을 지닌 타인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데서 생긴다. 그래서 이 「슬픔」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바로 「시기 질투」가 된다.

그 다음은 「분노」이다. 욕망들을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할 때, 슬픔의 시기가 지나면 분노가 치밀게 되어 있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유명한 「아케디아」인데, 현대어로는 사실상 번역이 불가능한 단어이다. 이것은 권태, 절망, 무기력, 우울 등의 심리적 위기 상태를 다 포함하며, 사람을 자살로 이끌기도 하는 치명적 힘이다.

‘아케디아’가 큰 적

에바그리우스는 아케디아를 은수자들의 가장 큰 적으로 꼽으면서, 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 걸리는 정오 무렵에 그 병증이 가장 심각해진다고 해서 「정오의 마귀」라고 일컫는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아케디아에 시달리는 수도승은 자기 암자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자주 해시계를 쳐다보며(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고 느낌), 혹시 손님이라도 찾아와 주지 않나 하는 바람으로 봉창을 열어 수시로 밖을 쳐다본다. 몸은 독방에 있어도 마음은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상태라는 것이다.

다음에 오는 것이 「허영」 혹은 공명심이다. 이것은 자기의 역할이나 기능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믿게 하여, 타인의 인정과 긍정적 평가에 악착같이 집착하며 언제나 좋은 인상으로 각인되고자 전전긍긍하게 한다. 마지막은 「교만」으로서, 자기를 모든 이의 위에, 그리고 온 세상의 중심에 놓는다. 그래서 늘 남을 콘트롤하고 지시하며 가르쳐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이로써 결국 자기를 하느님의 자리에 갖다놓게 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악한 생각」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후대에 요한 카시아누스를 거쳐 「7죄종」의 교리로 정착하여 오늘까지 전해져온다.

내적 자유

악한 생각들과의 영적 투쟁인 이 수행 단계의 말미에 도달하게 되는 지점을 에바그리우스는 「아파테이아」(내적 자유)라 일컫는다. 이것은 내면의 애착이나 충동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로서, 여기서 참된 「사랑」(아가페)의 능력이 비로소 꽃피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영적 생활의 두 번째 단계, 곧 「영지(靈智)」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깨끗해진 마음의 눈을 지녔기에, 이제 도처에서 하느님을 뵈옵게 되는 관상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영지 혹은 관상의 여정은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는 단계(physike)를 지나, 삼위일체 신비의 한 복판에서 벌거벗은 신성을 직접 뵈옵는 단계로 나아간다고 한다. 이 마지막 단계를 그는 「테올로기케」라 불렀다.

이처럼 에바그리우스에게 「신학」(theologia)은 책상머리에서 학자들이나 하는 지성적 작업을 훨씬 뛰어넘어, 영적 생활의 최심부(最深部)에 자리잡은 것이었다.

그가 남긴 한 단장은 천 육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대가 신학자라면, 그대는 정녕 기도할 것이다. 그대가 정녕 기도하고 있다면, 그대는 신학자이다』(「기도」 61).

이연학 신부(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